참빛상담실

왕 같은 제사장의 자존감

하재성목사 0 1,673

누구에게나 인생의 짐은 무겁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삶에 대한 두려움, 내일에 대한 염려, 갑작스레 찾아오는 외로움들은 한 인간의 존재가 경험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짐들입니다.

 

그리고 그 짐들은 무겁습니다. 마치 다리에 납덩이나 모래주머니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아래로만 잡아 당깁니다. 움직이기 힘들도록, 앞을 보지 못하도록

 

이처럼 삶에서 경험하는 막연한 피로감에는 약간의 자학성의 마약 성분도 있습니다. 그래, 난 이런 존재이니, 이렇게 고통당 하는 것이 마땅해! 차라리 이렇게 비참함을 느끼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어! 그냥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살지 뭐!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기대하며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였던 엘리야 선지자를 기억하십니까?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의 핍박과 추격을 당하던 삶에서 오는 피로감, 열등감,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의 삶의 에너지를 소진시켰습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습니다.

그를 재우셨습니다. 푹 재웠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먹을 음식과 물을 주었습니다. 엘리야는 먹고 또 잤습니다. 푹 잤습니다. 다시 천사가 와서 음식과 물을 주었습니다. 잘 먹었고 힘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것은 천사의 터치였습니다. 천사는 그를 만지며 깨웠습니다. 고함소리나 강압적인 힘이 아니라, 삶에 지쳐서 잠을 자고 있는 그를 터치하여 부드럽게 깨웠습니다. 이 따뜻한 손길과 몸의 힘을 돋우는 음식으로 엘리야는 다시 하나님의 길을 떠나 호렙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을 삼키려던 인생의 짐은 이제 자기가 질 만한 작은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연민이나 자학적인 우울감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기독교인들을 비교해 보면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높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우리들에게도 역시 연약한 지체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의 짐과 무거운 염려를 담당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존재감은 높아지고, 삶은 은혜로 풍성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이 힘드십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의 필요를 아시고 섬세하게 채우시고 만지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에 오시도록 초청하십시오.

 

질병으로 염려하십니까? 우리는 몸에 작은 이상만 와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연약합니다. 그러나 질병을 치유하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 그리고 그 질병을 우리의 삶을 위한 최고의 의미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는 자들의 질병을 치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교회는 나를 섬기는 고귀하고 권세 있는 제사장의 공동체라고 우리를 세워주고 계십니다.

 

혹 지속적인 염려가 있습니까? 무거운 납덩어리가 마음에 있습니까?
우선 좀 쉬세요.
좋아하는 음식도 드시고요.
내 삶에 기쁨을 주는 작은 일을 누려 보십시오. 그게 기호식품이든, 텔레비전이든, 혹은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사람과의 대화이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좋은 것들에 대하여 죄책감 갖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누리십시오.

그런 가운데 주님을 묵상하십시오.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부르시는 주님의 치료와 위로는
정말 크고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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