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빛상담실

우울증은 죄가 아닙니다

상담자 0 1,743

오늘날 신앙인들 가운데는 우울증을 죄의 일종이며, 게으른 사람들의 사치스런 감기라고 판단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편리하고 경박한판단은 우울증을 가진 다른 성도들이나 가족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혹시 자신이 우울증 약을 먹는 것을 알까봐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결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게으른 질병이 아닙니다. 우울증은 자기 가치를 잃어버린 영혼의 아픈 질병입니다진실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외로움과 고립에서 오는 지독한 질병이 곧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가족의 사랑과 관심조차도 메말라 버린 세대에, 진정한 친밀함과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의 애타는 손짓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족과 이웃과 교회는 이들의 간절한 도움의 요청을 라고 쉽게 흘려버려서는 안됩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 인생의 가치를 모릅니다이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환자의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과 지지를 행동으로 표현해 주는 이가 없어 소외와 고독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외롭고, 이들은 언제나 혼자입니다. 적어도 그들이 느끼는 절망에 있어서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데, 관계에서의 고립과 소외는 우울증 환자들의 고통스런 자책과 생명에 대한 회의까지도 불러 일으킵니다.

 

우울증 환자가 일단 자기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이후의 모든 경험은 자동적으로자기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잘못해서내가 죄를 지어서내가 무가치해서…!” 버림받거나 학대를 당해도, “나는 학대를 받아 당연한 존재야!”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요. 그럴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무가치감의 쓰나미 파도가 몰려옵니다. 길거리의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무가치해서 그런 것 같고, 조금만 상처를 입으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생각하며 고통을 반복합니다. 더 심해지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버렸다고 믿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 있는 모든 존귀한 가치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가버립니다.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이 깊어지면, 우울증 환자들의 몸과 마음이 함께 허약해집니다. 우울로 인해 몸이 약해지고, 몸이 약해짐으로 인해 더 우울해집니다. 악순환이 생기는것이지요. 점점 쇠약해지다가, 마침내 어느 순간에는 이런 자신의 존재를 끝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다고 위험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판단은 그들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그런 판단으로 내몰려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울증을 적극적 개념에서 죄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에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오히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서도 내몰리는 연약과 고통이라 판단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우울증의 원인을 하나로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다양한 원인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사랑하는 관계의 상실입니다. 미국의 목회 신학자 크리스티 뉴거(Christie Neuger) 교수는 두 배나 많은 환자군인 여성 우울증 환자들 가운데 다수가 남편으로부터 무시 혹은 폭행당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의 관계이어야 할 부부관계가 무책임한 방치와 무서운 폭력으로 이어질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존재감은 바닥도 없이 추락하게 됩니다. 폭력이 생활화되면 우울증을 가진 여성은 자신이 그런 폭력을 당해도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 비천한 자신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 믿게 됩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10대 청소년과 노인들의 우울증은 과도한 성적 경쟁으로 인한 자존감 상실과, 자녀와 사회로부터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노인들의 자살 때문입니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지친 아이들에 대한 작은 비판이 그들을 인생의 극단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경제적 압박과 관계의 단절, 혹은 노년의 질병에서 오는 노인의 소외가 그분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내몰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집안에 있는 빨랫줄은 자신의 소외와 고통을 끊어줄 수 있는 편안한 도구처럼 생각되고, 높은 아파트의 주차장은 자신을 편히 안아 줄 쿠션처럼 느끼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사랑의 관계의 결핍에서 오는 견딜 수 없는 소외의 고통 때문에 존재감을 상실하게 되고, 생각과 감정은 기형적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이들은 생명과 죽음의 의미까지도 거꾸로 생각하게 되는 심각한 증상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울증은 죄라는 새삼스런 강조나 정죄가 아닙니다. 어떤 형태이든 이들에 대한 비난이나 판단은 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이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는 것은 교회나 이웃들의 비방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믿음의 연약을 탓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큰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모든 종류의 비난과 도덕주의적 판단은 연약한 이들의 어깨를 영적으로 절망하게 하는 연자 맷돌입니다.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관심을 통한 자기 영혼 가치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에서는 당신은 하나님께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은 참 가치로운 분입니다!” 라는 당연한메시지를 말과 행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 자신만큼 악하고 나쁜 인간은 없다며 스스로 불필요한 짐을 지는 그들에게, 특히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와 가족, 교회의 동료들은 조건없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지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Comments